이정은 가이드 등록증에서 시선을 떼고 가을을 바라보았다. 충격받은 얼굴이 웃기긴 했지만,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정보 값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읽히지 않았다. 이정은 S급 정신계 에스퍼였다. 대부분의 에스퍼에게 보호막이 있지만 S급 에스퍼의 능력을 막을 만큼 강력한 보호막은 흔치 않았다. 에스퍼든, 가이드든, 이정은 굳이 노력해서 타인의 생각을 읽으려 하지...
가을은 결국 예술학부 건물 앞에 당도하고만 자신의 발을 원망했다. 그래도 예술 대학이라고, 이 캠퍼스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조형미가 있었다. 하지만 조형미가 다 무슨 소용인가. 건물의 한쪽 벽면이 섬세한 조각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 봤자 그 내부는 결국 에스퍼 훈련학교의 예술학부일 뿐이었다. 가을은 앞으로 1년은 들락거려야 하는 건물 앞에서 한숨을 잔뜩 쉬었...
가을은 무심한 얼굴로 카톡 창을 두드렸다. 건너건너 소개받은 남성과의 카톡이었다. 텍스트로 주고받는 대화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저번 주말에 만나봤을 때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생긴 것도 준수했고, 매너도 좋은 편이었다. 상대방도 가을을 좋게 생각했는지 먼저 애프터를 걸어 온 참이었다. 직업 또한 대한민국 사람은 모를 수가 없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는 ...
"그건 네가 1차 침입자들 전부 처리했을 때 이야기고. 정면 돌파도 적당히 해야지." "실전 임무 들어갔을 때 그런 거 따지고 있을 정신이 있을 것 같아? 적당? 개나 주라고 해." 아침 훈련이 끝나고, 솔B와 서지호가 또 신경전을 벌였다. 서지호가 알파팀에 들어온 지도 몇 달이 지나서, 이제 알파팀의 팀원들은 솔B와 서지호의 의견충돌을 늘상 찾아오는 상시...
센터에서 일해야겠다 마음먹은 순간부터 지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센터 소속 가이드가 된다면 한 번쯤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고, 알파팀으로 배정받았다는 소식에 혹시나 했었는데 정말 같은 팀이 될 줄이야. 정작 그 사람은 반가운 얼굴보단 놀란 얼굴에 더 가까웠다. "서지호입니다." 지호가 별다른 말 없이 담백하게 자기소개를...
내 불면증은 꽤 역사가 깊었다. 멋모르던 신생아 시절에도 품에서 내려놓으면 잠에서 깨는 예민한 아기였고, 유치원 낮잠 시간에도 작은 소리에 깨어 선생님들을 난감하게 만드는 아이였다. 늘 부족한 수면시간은 성격에도 영향을 미쳐서, 결국 커서도 날카롭고 예민한 성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에게 수면은 휴식보단 매일 밤 돌아오는 숙제에 가까웠다. 그래서 중학생 ...
"선물로 꽃은 어때?" 지호가 솔B의 옆자리에서 무심히 말했다. 다음 주가 솔A의 생일이었다. 예슬이 생일 선물 준비를 위해 스터디원들에게 아이디어를 모집하고 있었고, 솔B는 솔A의 룸메이트라는 이유로 이 회의에서 결정권한이 꽤 큰 편이었다. "그런 건 애인이나 주는 거고. 그 성격에 식물은 먹을 수 있는 걸로 달라는 소리나 들을 걸." 솔B가 지호의 성의...
솔은 천천히 돌아가는 LP판을 바라보았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지호와 솔의 관계가 마치 돌아가는 LP판처럼 느껴졌다. 턴테이블은 지호의 것이었고, LP는 솔이 지호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이 노래는 누구의 노래일까. "와인 가져왔어." 솔이 LP에서 시선을 떼고 지호를 바라보았다. 지호는 솔의 입술 자국이 남은 와인잔에 와...
12시. 평소라면 안대를 쓰고 침대에 정자세로 누워있어야 할 시간에 솔B가 안경을 쓴 채로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다가오는 변시때문에 잠을 줄이고 공부량을 늘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라고, 솔B의 룸메인 솔A는 가볍게 짐작하고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하지만 그 짐작과는 다르게 솔B가 종이에 써 내려가는 글씨는 법과는 상관없는 글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뭐든 증...
솔의 기억에, 서지호는 처음 만날 때부터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이제 갓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는 나이 때에 들기엔 꽤 가격이 나가는 카메라였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중학교 입학식에 가던 길에, 어쩐지 교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학교 옆 골목의 고양이를 찍고 있던 남자애. 지나가며 잠깐 눈에 담았던 그 아이가 같은 반 옆자리 학생인 걸 알았...
"서지호 안경 바꿨네? 솔B거랑 비슷하다." 아지트로 들어오던 예슬이 지호를 보곤 말했다. 눈썰미가 좋아 스터디원들의 저런 사소한 변화를 알아채는 건 늘 예슬이었다. "강솔거 맞아요." "아 그래?" 평이한 지호의 말에 특이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대꾸하던 예슬이, 자리에 앉고 나서야 이상함을 눈치챘다. "솔B 안경을... 네가 왜 쓰고 있어?" "도수가 똑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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