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아무래도..?” 이정은 뜸을 들였고, 가을은 되물었다. 이정은 말을 고르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떤 말을 해도 짙은 소유욕이 묻어나려 하는 것 같았다. 앞서 말한 바 있는, 담당 가이드가 되어달라는 말 조차 가을을 향한 짙은 소유욕이 배어나서 가을이 눈치채고 도망갈 것만 같았다. 소유욕이라던가 하는 질척한 욕망의 감정은 이정조차도 낯설어 이...
닫힌 줄도 몰랐던 연구실의 문이 열리며, 이정이 뛰어 들어왔다. “가을 씨 괜찮아요?!” 이정은 난장판이 된 연구실과, 갑자기 부자연스럽게 행동을 멈춘 에스퍼를 보고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 “저 사람… 이정 씨가…” 이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을이 크게 다치지 않았음을 확인한 이정이 그제야 그 에스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을 씨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
이정이 고통에 신음했다. 화상과 타박상의 고통이 밀려들어 왔다. 전신이 타버렸을 수도 있는 폭발 사고였지만, 그나마 물 타입 에스퍼인 지후 덕에 다리 한쪽에만 화상을 입는 것으로 마무리 된 게 다행이었다. 아직도 폭발 사고는 이어지고 있었고, 에스퍼인 준표와 지후, 우빈은 여전히 사고를 수습하느라 뛰어다니고 있었다. 가이드인데다가 부상을 입은 이정만이 사고...
치유계 에스퍼가 가이드를 치료하는 과정을 처음 본 건 아니었다. 수도 없이 많이 봐왔고, 직접 치유계 에스퍼에게 치료받아본 적도 있었다. 가을이 치유계 에스퍼를 마다하고 병원을 찾아가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오히려 걱정을 했었다. 치유계 에스퍼에게 치료받는 게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 보다 훨씬 빠르고 확실하게 나아질 수 있는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러게요. 선배가 제 친구를 왜 그렇게 걱정하는 거예요?” 잔디가 준표의 질문에 동조하며 모른 척 이정에게 물었다. 잔디의 얼굴에 가득한 호기심과 경계, 걱정을 보며 이정은 잔디가 가을에게 자신에 대해 다 들었으면서도 시치미 떼고 있다는 걸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금잔디가 가지고 있는 걱정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게 어렵진 않았다. 에스퍼로 발현되기 훨씬 ...
*소을이 아닌 꽃남 커플글은 처음이네요. 혼자서 진심으로 엮어 먹고 있던 커플이랍니다... 언젠간 이들을 주인공으로 연성을 꼭 올리고 싶었는데, 화이트데이를 핑계 삼아 드디어 써봤습니다. **지후재경에 꽤나 진심인 편이라, 현재 쓰고 있는 작심삼월글이 마무리되면 이 글로 연재를 진행할 것 같습니다. 화이트데이 이벤트 필수조건이 유료 발행이라 뒷부분을 유료로...
“그 사람을 찾아가야지, 왜 날 찾아온 거야?” “훈련학교 들를 시간도 없이 바빴어. 안 그래도 이번 주 금요일에 가보려고.” 마침 금요일에 정현아 교수와 약속이 잡혀있었다. 이번 연구에 대한 컨퍼런스가 주된 목적이었지만, 정교수에게 이정의 사정을 다시 한번 더 설명하고 가을을 설득해 볼 작정이었다. 사실 가을에게 이정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것 또한 연구 ...
[뉴칼레도니아 보트 위, 소울메이트에, 반짝이던 이정의 눈동자] “소울메이트? 여자들은 그래서 안 돼... 정말로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해?” “있죠. 당연히 있죠. 당신 같은 바람둥인 절대 이해 못하겠지만, 평생에 단 한 번뿐인 진정한 영혼의 짝이 있다구요.” “그래서, 가을양은 만났나? 그 영혼의 짝.” “아직이요. 하지만, 나타나면 절대로 안 놔줄 거예...
“지금은 어디서 일하세요?” “해외로 나갔단 얘기만 들었어요.” 예전에야 에스퍼 훈련생들과 교수, 교관까지 나서야 할 만큼 프로젝트성 임무가 많아서, 학교에서 훈련생들을 위한 보조 가이드 뿐만 아니라 정식으로 가이드를 고용하곤 했었다. 이정이 훈련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그런 가이드들이 없어지기 시작했으니, 이정이 가을의 아버지를 마주친 적은 없을 터였다. ...
“이정씨 우리 딸이랑 구면이야?” “아침에 예술학부에 갈 일이 좀 있었거든요. 가을씨가 정교수님 따님이셨네요.” 이정의 장난스러운 시선이 가을에게 길게 머무는 걸 가을도 느낄 수 있었다. 바쁘고 보기 힘들다는 사람이 오늘 하루 내도록 가을이 발걸음 하는 곳마다 존재했다. 이정의 시선에 우연이 겹치면 뭐가 어떻다는, 우습고 유치한 농담이 자꾸 떠오르려고 했다...
**2022년도에 발간했던 삐죠 회지 ‘사계’에 실었던 글입니다. “에취!” 서지호의 재채기 소리가 아지트에 울려 퍼졌다. 본의 아니게 모두의 시선을 모으게 된 지호가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코를 틀어막았다. “뭐임? 감기 걸렸음?” “아니.” 복기가 지호에게서 노골적으로 몸을 떨어트리며 물어보자, 지호가 복기를 흘겨보았다. 로스쿨생들에게 컨디션 관리는 기본...
가을은 물끄러미 정신계 에스퍼의 등록증과 명함을 바라보았다. 등록증이 바뀐 걸 안 이상 먼저 전화를 해야 할 것 같긴 했지만, 2시간 뒤에 또 올 거라는 조교의 말에 그저 명함의 번호를 보고만 있었다. 이정의 명함은 가을이 지금까지 봤던 명함 중 제일 단순했다. 이름이 한글과 영문, 한문으로 적혀있었고, 그 아래엔 전화번호와 메일 주소가 있을 뿐이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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